하늘 독서 후기

<길 위의 철학자> by 에릭 호퍼

하늘 독서 모음 2024. 12. 22. 13:07

일단 책의 제목에 매료되었다. 새로운 음식의 탄생이 떠오른다. 과연, 새로운 음식을 만들려면 기존의 방식대로 만들어야 하겠는가? 새삼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에릭 호퍼'의 삶이 우리가 흔히 접하던 철학자의 삶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에릭 호퍼는 자신의 인생에 열정을 다해 살아왔다. 단지 그는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그리고 연구를 하는 즐거움을 누려왔다. 그의 사색은 품안의 작은 노트에 문장들을 남기고, 문장들은 그의 각종 저서를 이루게 되었고, 그 결과로 우리는 그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죽지 못해 사는 도시의 노동자에서 방랑자인 떠돌이 노동자로, 그리고 부두노동자로 자신의 생계를 위한 일을 해 왔던 노동현장의 삶을 본다. 어린시절 시력을 잃었다가도 회복되자마자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머물고 있는 소년을 본다. 자기 손에 300불이 있으면, 그 돈을 모두 쓸 때까지 도서관을 찾아 다니는 젊은 일용직 노동자의 독서와 배움의 열정을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동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그를 보고, 때로는 노동자들을 관찰하는 그를 보며, 작은 노트위에 뭔가를 적고 있는 그를 보고, 낡은 책장을 넘기며 담배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를 본다. 생계를 위한 일을 끝내고 난 후의 자기 본연의 일(배움)이 바로 삶의 진정한 의미임을 강조하는 그를 보게 된다. 

 

Youtube에서 그의 유명했던 몇몇 인터뷰를 찾아본다. 독일어의 강한 엑센트가 그대로 배어 있는 영어의 억양, 큰 목소리, 굵은 손마디, 커다란 덩치, 그리고 때때로 눈을 감으며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노동현장에서의 씨끌벅적한 대화를 그려보기도 한다. 평소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고 있는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의 소설 읽는 법이 또한 책 속에서 소개가 되었다. 즉, 그는 소설을 읽을 때면, 책을 책상에서 멀리 놓고, 노트를 가까이 놓는다고 한다. 그만큼 읽은 꺼리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의문들이 또다른 창조물의 밑거름이 되어 빼곡히 노트를 채우지 않았나 싶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사색)의 힘이 그의 철학을 세상에 소개한 빛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자취가 남아있는 작은 에세이들을 묶어 놓은 자전적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즉,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그가 노동자로서, 또는 사상가로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때때로 그들을 관찰했던 이야기를 담기도 하며, 그의 일을 찾아 다녔던 도시의 여정을 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장의 군중속에서 자기의 철학을 정리하기 위한 사색하는 '에릭 호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사상을 적어놓은 글이라기 보다는, 그의 발자취에 대한 저널(Journal) 모음집이라고 해야 할 듯 싶다.  

 

제대로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일용직 노동자가 독학으로 배움의 열정을 채우고, 그랬던 그가 사상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어 책을 출간했다. 방송국들과의 인터뷰를 하고, 그의 사상이 TV전파를 탔고, 그의 책은 유명한 서적들이 되었으며, 대학에서의 강의도 제안받게 되었다. 그의 배움의 열정과 생각의 힘은 모두 11권의 저서를 세상에 남겨 놓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전해주고 있다. 에릭 호퍼는 그가 11권의 책을 남길 생각도, 대통령 훈장을 받을 생각도, 또는 유명한 철학자가 될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배움의 열정을 채워가며, 읽고 생각하고 쓰는 즐거움으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왔을 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