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내게 다가왔던 밀란 쿤데라, 그의 처녀작이라고 하는 <농담>은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있으면서 언젠가는 접해보길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들어 새삼 느끼는 것으로는, 한 권의 책을 읽으려 그 안으로 들어가지만, 결국은 그 책으로부터 샘물이 시작되듯, 그 작가가 살던 시대의 상황, 그의 생각을 쫓아보려 하고, 그때의 사회 분위기, 지명 등을 찾아보면서, 오히려 책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한 탐구를 해 가는 나를 보게 된다. 이러하기에, 책은 그저 '한 권의 책'이라고 할 수 없다.
1965년 12월 5일, 작가는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을 마친 후, 자신의 기록을 마치는 의미로 날짜를 남겨놓았다. 여느 책에 있는 작가의 소개란과는 달리, 단 세줄만 남겨놓은 그에 대한 소개(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엉뚱하기도 또는 괴팍하기도 한 그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아마도 그의 이런 면에 끌리는 듯하다.
목차를 보면, 각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각 chapter의 제목으로 적혀있다. 그 등장인물이 바로 '나'로 빙의되어, Chapter의 이야기를 전개해 놓는다. 밀란 쿤데라는 크게 네 명의 '나'가 되어, 남성 또는 여성이 되기도 하며, 그들의 생각과 사건들을 이어간다. 반 세기 정도의 인생을 살아 왔으면서도, 여전히 답을 낼 수 없는 '나'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 욕구를 좇아 책장을 넘기는 나를 보게된다.
소련의 지원으로 체코내에 공산주의가 창궐되던 시기, 공산당의 지식인으로 대표될 수 있는 루드비크는 어느날 그의 여자친구 마르케타에게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즉,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을 만한 글을 엽서에 적어 보낸다. '농담'을 농담으로 해석할 수 없던 그녀에게 전해진 한 통의 엽서는 이전까지 살아왔던 그의 삶과는 판이한 거친 삶의 길을 이어가게 된다. 꿈에서조차도 생각에 없던 당으로부터의 퇴출, 대학에서 학문을 위해 머무를 수 있던 지위의 박탈, 석탄병(군대 복무를 대신할 노동병)으로의 징집과 같은, 그의 계획에 없던 인생의 길을 가게 된다. 마치, 소설 <이방인>에서 '나'와는 상관없이 남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나'의 삶을 살아간다. 그 역경의 시간을 헤쳐오며, 루드비크 안의 원한/분노의 응어리는 쌓이고, 자신을 당으로부터 축출했던 친구 제마네크를 향한 복수를 그려온 듯 하다. 제마네크 아내와의 라디오 인터뷰,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와의 관계를 복수의 도구로 삼게 된다. 이러한 자신의 비밀스런 혹은 파렴치한 계획을 세워가며 이 책은 시작한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자신의 계획했던 바가 결국엔 실패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제마네크는 다른 정부(情婦)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아내와는 헤어지려 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5년의 세월동안 쌓여왔던 루드비크의 복수는 허망한 결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마치 허무한 농담처럼... 결국, '농담'으로 불행이 시작되었던 루드비크에게 '농담'과 같은 결말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글을 읽어가면서, 밀란 쿤데라 작가가 나타내는 인간의 마음을 보게된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나를 거북하게 느끼고 있다. 나는 그를 분노의 대상으로 미워하지만, 그는 나에 대해 하나의 죄책감도 갖고 있지 않다. 그/그녀와 내가 정말로 하나의 감정으로 또는 하나의 생각으로 동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 오직 '나'는 온전히 홀로 '나'일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것, 같이 살고 있는 부부라 할 지라도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것, 그것이 인간임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다음 번에 다시 이 책을 읽을 때는 어떤 감정이 나를 감싸게 될 지, 작은 기대의 샘을 남겨 놓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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