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으면 씹을수록 그 맛을 느낀다. 칡뿌리를 입에 넣고, 칡맛이 모두 빠질 때까지 씹어대곤 했다. 같은 산도 여러 번 올라가다보면, 지난 번엔 못 봤던 곳도 보이듯이, 읽었던 책도 다시 보면 지나쳤던 부분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한 권의 책 안에, 한 작가의 인생이 녹아있는 데, 어찌 한 번, 아니 두 번 읽었다고 모두 아는 척을 할 수 있겠는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재독(再讀)하면서, 책 속에 담긴 '인간'의 모습들에 나의 삶을 비춰보고, 나의 삶 속에서 '참아지지 않는 가벼움의 존재'를 헤아려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의 흐름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그들의 내면을 탐구한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한 사건이 다른 사람시점으로 다른 장에서 또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스며있는 '키치(Kitsch)'를 보며 감탄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본다. 그리고 '가벼움'이 '무거움'을 이끄는 것을 보고, '무거움'이 '가벼움'으로 변하는 것을 본다. '가벼움'과 함께 있는 '무거움'의 절망도 본다. 뿐만 아니라,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의 역사를 보고, 그 시기에 있었을 감시, 통제의 입틀막을 본다. '타인의 삶'이라는 동독 영화를 보았기에, 그 감시체제가 꽤 실감나게 느껴진다. 키치(Kitch)로 가득찬 공산주의 선전, 선동을 보고, 자유를 내세운 민주주의에서도 보고, 인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그것을 보고, 죽은 자들의 묘비에서까지도 그것을 본다.
밀란 쿤데라는 왜 이런 개인의 연애, 주로 성교의 관계들을 주된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 공산주의의 감시 체제를 의식하였던가? 물론, 그의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최대한 키치(Kitsch)가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얘기하고 싶었던가? 남성-여성의 관계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모든 인간들이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했을까? 같은 체코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을 만들어 놓은 것도 - 어찌보면,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는 정반대의 스타일 -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 가면서, 밑줄 긋고, 메모하다보니, 어느 경우는 온 페이지가 형광색이기도 하다. 나중에 다시 읽을 책으로 첫번째 읽은 후에 남겨 놓았더니, 두번째 읽고 난 후에는 세번째 읽을 책으로 남겨놓게 된다. 아래는 책의 내용을 소제목 중심으로 정리해 본 것이고,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의 이미지로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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