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에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그리고 세 권으로 묶여있다. 두꺼운 책의 겉면을 보고 있자면, 아마도 버겁다는 생각에 쉽게 손에 잡힐 것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꽤나 유명한, 그리고 이 작가만으로도 논문을 써 학위를 받기도 하고, 세계 곳곳에서도 평생을 연구하는 소위 전문 지식인들도 허다하지 않은가? 그러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있을테고... 그런 이유를 맛 보겠다고 남의 Youtube를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 것이 아니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워져 버리기 일쑤다.
2025년 새해를 맞는 날이 왔다. 새해에 구입한 나의 첫번째 책, 그리고 새해부터 읽기 시작한 책, 뭔가 의미있게 시작하니, 끝은 볼 것 같았다. 1879년에 <러시아 통보>라는 잡지를 통해서 연재가 되기 시작하여, 바로 다음 해인 1880년 11월에 완결을 한 소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881년, 그의 나이 60세에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갑작스런 질환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녹여낸 그가 살아왔던 삶의 다채로운, 또는 역동적인 경험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녹아있지 않겠는가하는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게된다.
마지막 3권의 책장을 덮은 후, 1권부터 3권까지의 목차를 다시한번 주르륵 훑어본다. 전체 4부로 나눈 12장의 구성, 각 장마다는 사건 중심의 소제목으로의 엮여 있고, 이는 잘 정리된 TV 드라마의 시나리오나 다름없다. 그만큼, 각 장을 이루는 소제목도 명료하게 내용의 요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1장부터 이어지며 빌드-업(build up)된 모든 이야기들이 마지막 12장의 법정드라마 부분에서 집약되어 클라이막스를 보게 해 준다. 그렇게 12장으로 끝나는가 싶더니, 에필로그에서 마치 영화가 끝나면 몇 글자 남기며, 그 후의 이야기라고 전해주는 그런 여운을 주고 있다. 여기서 나는, 굳이 '드라마'라고 표현한 이유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국 드라마의 마력을 이 이야기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에 독자에게 직접 얘기하는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말도 스토리를 이어가는 데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이 곳에 남기는 나의 감상문에는, 구태여 책의 줄거리나 등장인물의 묘사 등은 담지 않기로 한다. 이유인 즉슨, 3권의 마지막 부분에는 러시아 문학 전문가인 번역자가 직접 '작품해설'을 남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웹검색을 하면 스크린 가득 많은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나는 읽으면서 느꼈던 몇 가지 느낌들을 잊기 전에 남겨놓고자 한다.
첫째, 150여년이나 전에 쓰여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시대에 읽히는 데에도 오래되었다는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마치 명곡은 젊었을 10대나 나이든 50대나 똑같이 명곡이지 않는가?
둘째,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복잡한 러시아식이며, 또 축약하여 부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기에, 등장인물 리스트를 옆에다 두고, 때로는 기록해 가면서 읽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쉽게 들어오니,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는 데에 좀 더 편안함을 느꼈다.
셋째, 어찌보면 한국의 막장 드라마? 나는 드라마나 시리즈 등의 TV시청을 하지는 않는다. 이유인 즉슨, 한번 보면 빠져나오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기 때문이다. 놓치지 않고 보게되는 그런 드라마의 매력,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온순하게 담고있는 이야기, 화냄과 눈물도 있고, 사랑과 질투 등이 모두 섞여있는 인간이 갖는 이야기이다. 19세기 중반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감정은 같을 수 밖에...
넷째, 개인적으로는 삶의 철학이 담겨져 생각하게 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 접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다. 추리소설도 그다지 보는 편도 아니지만,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따져가며 책장을 넘기는 맛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다섯째, 거의 한 달 가량을 이 책과 같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중간중간에 다른 책도 읽긴 했지만... 이렇게 지낸 시간이 있었고, 나의 독서 열정이 담겼던 작품을 어느 누가 과연 '별로였어...'라고 비판적인 감상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보낸 시간과 노력이 아까와서라도 어떤 좋은 면이라도 찾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여섯째,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그가 겪은 간질이나 가난과 같은 경험도, 또는 그가 읽은 성경구절, 다른 책에서의 내용이나, 좋은 구절, 또는 등장인물 등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의 한 작품을 만들어 태우는 데에 쓰이는 장작들도 이용한다. 나도 언젠가 글을 쓴다면, 내 주위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글의 재료가 되도록 관찰해야 하리라.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을 두서없이 타이핑으로 이어가다보니, 지금에 이른다. 뭔가라도 쥐어 짜내면 더 나올 것도 같지만, 그러다보면 자연미는 떨어지겠지하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치려 한다. 아마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이런 감상문을 남긴 다른 이들은 없지 않을까? 괜스레 가벼운 웃음 짓고 다음을 기다리고 있는 책에 손을 뻗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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