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나의 ebook reader에 들어 있은지, 두 서너 달은 된 것 같다. 다른 책들을 읽게 되는 경우가 계속해서 생기다보니, 계속 미루고 있던 터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의 커져만 가는 전쟁 확산, 그리고 시민학살의 광기를 매번 뉴스에서 접하다보니,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의 죽음은 있지만, 나의 죽음은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나', 다른 이에게 '전쟁'은 있지만, '나'에게는 '전쟁'이 없다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전쟁'의 피해를 받은 이들의 고통은 어떨까...? 그리고 그들의 삶은, 인생은...? 마침내는 나라, 년도나 날짜, 지명, 도로번호 등의 숫자 같은 것으로만 남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슬픔, 고뇌, 아픔, 이야기 등은 없어지고 말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얼마 전, 본 작가의 <노인과 바다>를 읽어서 그런건가? 그의 간결하고도 힘있게 펼쳐놓은 그의 문체에 약간은 친숙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며,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간의 대치상황에 있던 전쟁중의 구급차 운전장교의 일상을 엿본다. 흔히 경험했던 전쟁영화에서 보는 극적인 장면, 탈출, 온간 역경을 겪는 치열한 전투 등의 모습은 크게 남지 않는다. 병사 아닌 장교, 그것도 매달 일정하게 입금받는 별도 수입이 있는 장교가 주인공이라 그런지, 기대했던 전쟁에 관한 소설은 아니었다. 다만,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싹트고 피워내는 사랑을 담아내고, 전쟁에서 도망쳐 사랑의 삶을 이어가는 연인, 사랑의 결과물로 갖게 된 생명을 출산해야 하는 고통, 그리고 겪는 연인의 죽음... 결국, 주인공은 홀로 병원을 나와 비를 맞고 걸으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나는 '전쟁'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삶에 대한 스토리에 갈망하고 있었나 보다. 평화를 운운하는 그들의 폭력적 모순에 초첨을 맞추고 싶었나 보다. 내가 죽여야 산다는 부조리를 보고 싶었나 보다. 잔인함이 일상이 된 인간을 보고자 했나 보다. 전쟁 중, 후방에서 지원하는 구급차 장교의 사랑이야기에 큰 애달픔은 없이 읽은 책이었다. 얼마 전 읽었던 나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by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에 대한 리뷰(https://myreadingclub.tistory.com/9)를 다시 한번 열어보며.... 글을 맺는다.
아래의 것은 읽으면서 밑줄 그은 생각해 봄 직한 문장들이었다.
-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데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전자가 후자에게 전쟁을 하도록 만들지요.
-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은요? 이들이 전쟁을 그만두게 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 사랑해 보세요. 당신이 밤이면 내게 하던 이야기.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단지 정열이고 육욕이지요. 사랑을 하면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 법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희생하고 싶지요. 봉사하고 싶구요.
- 나는 항상 신성하다느니 영광스럽다느니 희생이니 그 밖에도 공허한 표현에는 어리둥절한다. --- 중략--- 영광스러웠다는 것에서 영광을 찾아 볼 수 없었고, 희생이라는 것도 고기덩이를 매장하는 것 이외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면 시카고의 도살장과 다를 것이 없겠다. 마침내는 지명만이 위엄을 갖는다. 어떤 숫자라든지 어떤 날짜같은 것, 이것들이 지명과 함께 우리가 말할 수 있고 무슨 의미를 갖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들이다.
- 그 노인의 지혜라는 건 큰 착오란 말이오. 노인은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요. 조심스러워지는 거요.
- 그저 세상에 내던져 놓고 규칙을 말해 주지만, base를 떠나자마자 잡아서 죽여 버린다. --중략 -- 이건 틀림없다. 기다리고만 있으면 반드시 죽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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