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이상없다' 혹은 '개선문'이란 책은 이미 많은 독자들에게 친숙한 책일 것이며, 바로 그 책을 쓴 작가의 작품이다 하면, '아, 그렇구나'하며 좀 이해가 빠를 듯 싶다.
먼저,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원제를 살펴보았고, 원제는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영어번역시, Time to live and time to die와 같다. 결국, 한글제목은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제목(Time to love and time to die)을 그대로 한글로 갖다 썼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의 눈으로 경험하게 되는 전쟁의 현장, 바로 죽을 때! 그리고 그 전쟁 중에 얻은 휴가기간, 주인공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 사랑, 그것이 바로 살 때! 죽음은 나의 의도와 다르게 지금이라도 닥칠 수 있다는 부조리(이는 알베르 까뮈의 고뇌였기도 했다)를 보여준 듯 하고, 살아감은 잊고 지냈던 사소한 것에서 이미 있었던 행복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휴가를 마치고, 죽음을 맞이할 전장으로 다시 복귀할 때, '비로소 완전한 자유와 행복이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그가 누렸던 일상의 삶 속에서 존재했음을 깨닫는다'고 표현함과 같이...
실제로, 작가는 1차 세계대전을 직접 참전하였고, 이미 그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다른 작품에도 구체적으로 반영했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을 승리해야하는 독일군에 소속된 독일병사가 보고 겪은 '전쟁 중인 상황'의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는 읽는 내내 영화필름을 돌리고 있는 듯했다. 왜 작가가 '전쟁'을 반대하며 결국엔 나치에 의행 독일시민권을 박탈당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죽어가는 전우, 이미 죽은 시체들, 그 시체의 방치, 폐허, 전쟁의 잔혹함을 보면서, 이미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질질끌고, 명분을 내세워 시민들을 학살하고... 이와 같이, 생명을 강제적으로 앗아가는 행위는 그것은 살인(학살)의 명분밖에 되지는 않으리라. '전쟁-죽을 때, 일상-살 때'를 되내이어 보면서, 내가 은연중에 지나쳤고, 잊고 있던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보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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