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에 이어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을 손에 쥔다. 이미 영화로 또는 수상이력으로 이 작품의 제목은 나도 어렴풋이 들어 본 것 같다. 작가와 같은 도시에서, 같은 세대를 거치며, 또 같은 사회를 겪으며 자라왔지만, 나는 도무지 체험할 수 없었던 여성이 가졌던 내적 분노, 타협, 무력감 등을 엿본 것 같다. 세 개의 단막으로 구성된, 각 장은 발표시기와 발표된 책자가 서로 다르기도 하다. 이렇게 각각이 한편의 단막극이지만, 또한 모아놓으니 하나의 작품이었다.
- 채식주의자
작품속에 나오는 '영혜'가 갑자기 채식을 고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갑자기 온통 '피'에 묻힌 손, 입, 얼굴, 날고기를 씹어대는 그런 혐오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고기를 완강히 뿌리치고, 채식만을 고집하는 '영혜'를 본다. 평범한 일상에서 그동안 짓눌려왔던 꿈틀거리는 진정한 자신을 꺼내려는 건가? 아버지의 폭력적 훈육에서 도망치려는 내적인 심정의 표출인가? 자연스럽게 타협하고 즐기며 살아왔던 살육에 대한 잔인함에 대한 반항인가? '영혜'에게 그 꿈이 다가왔다. 더 이상은 고기를 입에 댈 수 조차 없다. 그 변화를 대하는 주변의 모습을 본다. 아내를 사랑의 관계보다 자기가 살기 편한 도우미로 보는 남편의 모습을 본다.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의 억지와 폭력을 본다. 결국 영혜는 숨겨왔던 자신의 표출이었던가, 자신의 손목을 칼로 가해하면서까지 먹기를 거부한다. 결국, 병원으로 옮겨진 영혜, 이제 영혜의 가족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영혜는 정신병원을 가게되고, 이혼을 당한다.
- 몽고반점
그는 영혜의 형부다. 그에게 있어서는, 가족의 관계보다 예술의 창작이 삶의 우선이자, 삶의 모티브이다. 영혜가 아직도 갖고 있다는 '몽고반점'의 이야기가 길 잃은 그에게 북극성을 보여주는 바와 같다.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해답이 풀려가 듯, 그의 예술적 욕구가 그를 지배한다. 때론, 이것이 성욕의 표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는 인간의 몸에 꽃을 그린다, 즉 바디페인팅을 한다. 처제의 '몽고반점'이 그 꽃의 생명을 더한다. 한편, 영혜는 그 꽃을 그려넣고 나서는 그녀를 괴롭히던 악몽도 더이상 꾸지 않는다. 그는 두 꽃의 교합을 그려내고 싶어했고, 그것이 곧 그의 작품의 완벽한 결정체인 것이었다. 결국, 그 자신에게 꽃을 그려 넣게 되며, 성욕으로 시작했으나, 예술적 창작으로 마무리한 그의 완성품은.... 그러나 그의 아내에게는 작품일 수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죄이며, 정신이상의 결과로 밖에 해석될 수 없었다. 성하지 않은 영혜에게 파렴치한 악을 행한 잔인한 새끼일 뿐이었다. 영혜는 또다시 정신병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 나무 불꽃
그녀는 영혜의 언니이다. 그녀는 그(영혜의 형부)의 예술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희생을 해 가면서 그를 보살펴 주는 데에 만족을 느낀다. 그가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음이 좋았고, 애정을 확신하지 않은 채 결혼하였다. 19살부터 서울로 올라와 자기의 힘으로 헤쳐오며 달려왔던 그녀였다. 그녀와 아들, 이제는 둘만 남고, 평범한 그리고 반복된 일상 속에서 그녀는 서서히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전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것을 느낀다. 정신병원에서의 영혜는 도무지 먹지 않는다. 영혜의 신체는 죽어가고 있다. 자신의 팔이 뿌리인 양, 그리고 자신의 다리는 계속 치솟는 가지인 양, 물구나무른 선다. 사람들은 영혜에게 먹이려고만 한다, 그러나 이해하려 하는 사람은 없다고 영혜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녀는 어린시절 때의 영혜와 길을 잃었던 때를 생각하며, 그때 했었던 영혜의 반응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도 영혜가 느꼈던 삶을 발견해 간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을 돌이켜 보게 된다. 영혜가 먼저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영혜처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영혜를 중환자실로 데리고 가기 위한 구급차 안, 다음의 문장으로 작품을 마치고 있다. 그녀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글을 마치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때론, 관례대로, 습관대로, 또는 대개 그러한 거야... 하듯이 살아간다. 내일이 되면, 한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또 하루의 내일을 살게 된다. 그렇게 살아내면서, 이전에 살아왔던 관성에 휩싸여 '나'를 잃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곧, '나'라는 육체적인 껍질 속에 '나'라는 자기 본질이 없는 삶을 살지 않는가? '나'로 온전히 살아가도록 잃지 않는 '나'를 갖는 삶이 되기를 작가는 바라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머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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