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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현' : <꿀벌과 천둥> by 온다 리쿠

하늘 독서 모음 2024. 12. 7. 11:51

책으로 하는 음악 감상의 신세계, 꿀벌과 천둥

음악을 듣고 느끼는 것에서 문자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해 준 책이다. 작가는 연주를 표현하면서 같은 말을 쓰지 않으려고 계속 퇴고하고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 덕분에 글자로 감상하는 연주는 내 상상력까지 더해져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졌다. 2주간의 콩쿠르를 쓰는데 12년이 걸렸다고 하니, 표현 하나하나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피아노는 내게 애증의, 결코 넘지 못했던 산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우리 엄마는 내가 여섯 살때부터 내게 피아노를 가르치셨다. 그땐 다 그랬겠지만, 레슨 시간 엄마는 엄했고, 손 모양이 흐트러질때마다 자로 손등을 때렸다. 이 악보를 30번 치라는 숙제를 내 주시고 장을 보러 나가셨고, 나는 엄마가 내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할 거리까지 멀어졌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만 두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돌아오실 무렵 다시 연습을 시작하곤 했다. 실력이 늘리 없었으나 이 고역의 시간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 뿐만 아니라 내 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을 그만 두셨다. 딸 셋 중 누구 하나가 피아니스트는 아니더라도, 피아노는 꽤 그럴싸하게 연주하기를 바라셨겠지만, 딸들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 안의 피아노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가끔 엄마에게 레슨을 받으러 올때만 소리를 냈다. 그것도 나중에는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다가 결국 우리 집에서 영영 사라졌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참 싫어했던 피아노에 인생을 걸고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도전하는 천재들의 이야기, 그건 또 달랐다. 원래도 천재들의 이야기를 재밌어하는데, 음악 천재라니. 가자마 진, 에이덴 아야, 마사루, 다카시마 아카시 등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흥미로웠다. 조기 엘리트 교육으로 정형화되어가는 음악계에 가자마 진 같은 보석의 등장은 그야말로 ‘기프트’ 였으리라. 읽는 내내 가자마 진의 다음 무대를 기대했고, 작가는 또 얼마나 놀라운 표현력과 문장력으로 그걸 전달할지 설레기까지 했다. 

아카시가 주최측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벅찬 감정을 느끼고, 눈물이 흘렀다. 천재들 사이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도전했던 평범한 생활인인 그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 번째 예선 내용부터는 유튜브를 찾아 ‘꿀벌과 천둥’의 ost 연주를 틀어놓았다. (2020년에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연주자에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조성진, 임윤찬, 선우예권도 있었고, 더욱 반가웠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책을 읽다가 연주 소리에 더 마음이 가면, 한동안은 음악을 감상했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꽤 즐거웠다. (근데 1,2,3등은 다....왜 한국인은 없냐구요....) 

700페이지 분량의 벽돌책이지만, 내용이 긴박하게 흘러가 전혀 지루하지 않게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책으로 하는 음악 감상의 신세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